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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 관리하기

성인ADHD의 기억법 - 기록하기 04-1

by 플리🎵 2022. 8. 19.



성인ADHD의 기억법 - 기록하기 01
성인ADHD의 기억법 - 기록하기 02
성인ADHD의 기억법 - 기록하기 03


이 블로그를 시작한지 어언... 몇 달이지... 아무튼 꽤 지났다! 기록하는 습관과 플래너 양식이 안정되면 얼른 글을 쓰고, 행동치료의 다른 챕터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양식'이 안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어느 날은 타임 블록을 썼다가, 어느 날은 투두리스트만 썼다가, 또 어느 날은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분명 '앞으로 계속 필요할 만한 양식'을 추가한 건데, 어떤 날에는 잘 써먹었지만 어떤 날에는 필요가 없었다. 결국 예쁜 기성 플래너를 쓸 수 없다는 사실만 또 확인하게 됐다. 하지만 이젠 나쁘게 생각하기보다 내 특성으로 생각하려 한다. 가변적이지 않으면 아마 또 플래닝 자체에 질리겠지🤔

얼레벌레 엉망진창 너저분 악필로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래너를 네 달째 꾸준히 쓰고 있다. 몇십 년 동안 못 하던 일을 하게 되어 무척 뿌듯하다. 비록 예쁘고 정갈하게 쓰진 못해도 플래너가 일상에 기둥을 세워 주고 있다.

내가 플래너를 쓰는 방법을 정리해 보면, 고정된 것은 딱 두 가지다.
바로 '쓰는 순서'와 '쓰고 돌아보는 시간'. 지금 내게 정착된 습관에서는 이 두 가지만 유지한다면 무슨 툴을 쓰고 무슨 양식을 쓰든 상관이 없다!


1️⃣ 내가 플래너를 쓰는 순서



이 순서는 앞선 글에 적은 인지행동치료 책의 내용과 똑같다ㅋㅋ^^
이것만은 거의 수정되지 않고 습관으로 정착되었다.


1️⃣ 머릿속에 떠다니는 온갖 할 일을 '일지'에 수시로 쏟아 놓는다.
내가 일지라고 부르는 노션 페이지가 포괄 투두리스트의 역할을 한다. 일지는 아예 하루종일 켜 놓고, 뭐가 생각나든 다 적는다. 내 뇌를 통째로 옮긴다는 느낌으로다가 운영한다.


2️⃣ 일지에 적힌 수많은 일 중 '오늘 할 일'만 골라 불렛저널로 다운로드한다.
이 때 일을 쪼갠다. 예를 들어 일지에 "보고서 쓰기"가 있다면, 불렛저널로 다운로드할 때는 "목차 구상"처럼 오늘 할 수 있을 만큼만 쪼개어 적는 것이다. 그리고 불렛저널에서 내가 저항 없이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더 쪼갠다. 따라서 "보고서 쓰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이 할 일이 노션 일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냥 이런 시스템이므로 '남아 있는 할 일'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노션 일지의 투두리스트는 도로의 '표지판'에 가깝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군지도 잘 까먹는 나에게 지금 여기가 어디이며, 또 어디로 가야 한다고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정보성 기록인 것이다.(불렛저널에 쪼개 적은 할 일들도 비슷하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해! 투두리스트는 나에게 압박을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야!...라고 애써 생각하기!!)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정해진 약속은 구글 캘린더에 쓴다.(얘기만 나오고 시간이 안 정해진 경우에는 포괄 투두리스트에 적는다)
구글 캘린더는 약속 정해지면 바로 적는다. 바로 적지 않으면 반드시 까먹기 때문에... 나는 시간과 장소, 만날 사람들까지 최대한 정확하게 적어둔다. 변동이 있을 경우에도 즉시 수정한다. 단 1분이라도 미뤘다가는... 까먹는다. 이젠 내 뇌를 안 믿는다! 하핫!^^

약속을 잡기 전에 캘린더부터 켜는 습관도 들였다. 이 말인즉슨... 그 전에는 약속을 겹쳐서 잡는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아니, 그날 약속이 없는 줄 알았지!


이렇게, 지금 나는 뇌 ➡ 일지 ➡ 불렛저널 이라는 단순한 과정을 뼈대삼아, 다양한 양식을 모듈처럼 더했다 빼면서 플래너 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2️⃣ 내가 플래너를 쓰는 시간, 돌아보는 시간

포스트잇에 쓰는 간단한 투두리스트라 할지라도...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계획을 다시 보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계획은 다시 보는 게 더 중요하다!!



헉헉... 나만 이제서야 깨달은 진리일지도 몰라... 그치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써먹겠네.

위의 이미지는 내가 언제 계획을 작성하고 점검하는지 간단히 표시한 것이다.
노션의 일지는 수시로 보는데,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어제 일지를 그대로 ‘복사’해서 오늘 날짜로 고친 뒤 점검한다. 이렇게 하면 반복되어야 하는 양식도 딸려오고, 어제의 일도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히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오늘 버전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전체를 톺아볼 수 있다. 이제 안 써도 되는 모듈이 있다면 이때 지운다. 노션 일지에는 ‘감사 일기’도 있는데, 그것도 이때 쓴다. 아침 9시에ㅋㅋㅋ

점검이라고 해도 별 건 아니다. 완료된 일이 있는지, 이제 안 해도 되는 일이 있는지, 어제는 안 보면 죽을 것 같았던 유튜브 채널 주소 메모인데 오늘도 그렇게 좋은지, 행동치료에서 시킨 걸 적었는데 오늘도 필요한지 등등... 노션 일지에는 할 일이나 메모뿐 아니라 아이디어라든가 단상 같은 것도 적혀 있는데,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생각들은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서 모아놓는다.(보통 거의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다. 그래도 일단 모아놔... 이것도 뭐... 할머니 되어서 보면 재밌겠지...)
이런 식으로 한번 쭉 훑은 뒤 불렛저널에 오늘의 하루를 꾸린다.

일지를 점검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불렛저널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급하면 노션이 아니라 불렛저널에 메모를 하기도 한다. 특히 전화 받을 땐 펜으로 바로 적는 게 편하더라. 그런 메모 중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일지로 '업로드'한다.(위로 향하는 화살표 모양 불렛을 쓴다.)

그리고 원래 불렛저널에서는 월초에 '월간 이동'을 하게 되어 있다. 인터넷에서는 불렛저널의 불렛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소개한다. 나도 처음에는 불렛에 혹했는데, 월간 이동을 해보고서야 여기에 눌러앉았다. 간단한 과정이 추가되는 건데도 효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불렛저널 책에서도 이걸 중요하게 다루더라. 이건 나중에 따로...

왜 지나간 플래너를 봐야 하는지 누가 묻는다면... 나도 원래 안 봤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로 내 일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은 내가 세웠던 계획에 스스로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뭐가 힘들었는지, 뭐가 안 맞았는지, 지난주의 나와 지난달의 나는 뭘 하려 했는지,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쓸 수는 있는데, 그냥, 이 글을 보시는 분이 혹시 지난 계획과 플래너를 안 보는 타입이라면...
그냥 어제 짠 계획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일들은 어떻게 처리할지, 이 메모는 어디에 넣을지 같은 후속 조치는 어차피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딱 두 개뿐이었다. '지금''지금이 아님'.
거칠게 말해서 나한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지금도 나는 지금 이 순간 말고는 다른 시간 개념을 체감하기가 힘들다. 지나간 일을 기억할 수는 있는데 '얼마나 오래 된 일인지' 알기가 어렵고, 미래의 일은 거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느끼기가 어렵다. 순간 정신차려 보면 2시간이 지나 있고, '잠깐' 딴짓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 지나 있다. 시간이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는 것만 같다.

아마도...

흐릿...


이런 왜곡된 시간 인지를 Time Blindness라고도 부른다. 관련 기사는 여기.
'지금'이 아닌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일에는 두 시간이 걸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해도 보통은 틀린다. 이렇게 왜곡된 시간 인지를 교정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열매책이라는 플래너가 시간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타임블록 모듈을 사용하면서 계획을 재점검하도록 설계된 플래너다.

방금 무슨 단어가 지나갔죠? 재점검? 다시 본다는 뜻이죠?

지나간 어제의 계획을 보면 '어제'가 생긴다. 한 달 전의 계획을 보면 '한 달 전'이 생긴다. 불렛저널의 월간 이동을 해 봤더니 '다음 달'이 생겼다.

행동치료 책에서는 일과를 시작할 때 계획을 세우고 일과가 끝날 때 점검하기를 권하지만, 나는 집에 가면 '밥도 해먹기 힘든데 무슨 일지를 보고 앉아 있어~!'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냥 아침 시간에 어제 일지를 점검&정리함과 동시에 오늘 계획을 세운다. 소기의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책에 있는 방법을 바꿔서 쓰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처음 기록에 대한 글을 썼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오늘 쓴 뼈대를 바탕으로 해서 다양한 양식이 붙어 있는 상태다. 생겼다가 사라진 것도 있고, 꽤 꾸준히 쓰는 것도 있다. 노션에는 기분을 기록하는 양식이 추가되었고, 불렛저널에는 칭찬스티커가 함께한다.
내 기록법의 특징이라면 필요할 때마다 양식이 생겼다 사라지는, 모듈식 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하니까 멋있어 보이네? 다른 말로는... 어수선? 엉망진창?ㅋㅋㅋ
뭐, 이제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을 좀 포기했다. 뭐든 다 널부러뜨려 놓는 게 내 정체성이겠거니... 그래서 플래너도 이렇겠거니... 그리고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에 대한 글은 두어 편만 더 쓰면 마무리될 것 같다.
내년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하고 있을까? 그 변화를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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