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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 장애(2형) 관리하기

환자의 입장에서 양극성장애와 ADHD 증상 구분하기

by 플리🎵 2022. 7. 29.




인터넷에도 ADHD와 양극성장애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적힌 글을 보고 싶었는데... 잘 없길래 내가 하나 보탠다.

2형 양극성장애는 우울증, 불안장애와 더불어 ADHD의 대표적인 동반질환이다. 양극성장애의 입장에서도 ADHD는 다섯 번째로 흔한 동반질환이다. 둘이 친하니? ...왜지??^^...

양극성장애의 유병률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다. 1형 장애가 0.4~1.6%, 2형 장애가 0.5% 정도로, 조현병과 비슷한 유병률을 보인다. (물론 진단체계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성인 ADHD 환자 중 양극성장애의 동반이환은 5~47%에 이른다. (우울장애의 경우는 약 1/4~1/3이다. 너무 높다...)
다시 양극성장애의 입장으로 보면, ADHD의 동반이환율은 약 6%다. 또한 한 가족 내에서 ADHD와 양극성장애가 공존하는 경우가 흔한데, 심지어 '동반이환되는 경향'까지 함께 유전된다고 한다.


ADHD와 양극성장애의 공통 증상

  ADHD 양극성장애
주의력결핍
실행기능 저하
충동성
자극 추구
좌불안석
물질사용 공존

뭐 이러냐



나는 저저번 진료에서 의사선생님과 조증 진단기준을 체크했다. 쪽팔리지만 "저는 맨날 이런데요???"라는 말을 세번이나 했다. 당사자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증상이 비슷한 이유는 신경생물학적 원인에서 찾을 수 있다. ADHD와 양극성장애는 같은 변이 유전자 몇 가지를 공유하며, 이상이 나타나는 뇌 부위가 동일하다. 증상이 비슷하기에 전문가들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딴소리지만, 그래서 정신과는 최소한 몇 달은 보고 다니는 게 좋은 것 같다. 의사에게도 나를 충분히 보고 진단을 확정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특히 양극성장애는 (경)조증 삽화 기간보다 우울 삽화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에 주요우울장애로 첫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 양극성장애와 ADHD는 정말로 헷갈린다고 한다ㅋㅋ

그런데 증상이 똑같으면 결국 같은 병인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다. 당사자로서, 놀랍게도 두 병은 너무나도 다르다. 둘 다 주의집중 문제가 있는데, ADHD는 보통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문득 눈에 띈 무언가에 주의가 끌리는 바람에 산만해지는 경우가 많다.(우리가 웹서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경조증도 주변의 자극 때문에 쉽게 산만해지곤 하는데 그 정도가 더 심하며 머릿속의 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시끄럽고 주제가 휙휙 바뀐다. 사람은 원래 생각이 있는 상태가 정상이라지만(디폴트 모드), 내 생각인데도 내가 쫓아갈 수 없으며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양극성장애와 ADHD를 구분하거나 동반이환 여부를 알아 내는 일은 환자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요하니까 크게 씀




ADHD에 사용되는 정신자극제(메틸페니데이트)는 조증을 촉발할 수 있다. 반대로 기분조절제만 먹을 경우 부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ADHD 없이 양극성장애만 있을 경우, ADHD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증상이 기분조절제로 잡힐 수도 있다.

(경)조증 진단은 여기서 해볼 수 있다. 검색하면 많이 나오긴 하는데, 구글에 검색했을 때 상단에 뜨는 걸로 가져왔다.



그럼 환자의 입장에서, ADHD의 증상과 양극성장애의 증상은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일단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가 받은 최초의 진단은 '기분부전증'이다. 이후 '양극성장애'로 진단명이 바뀌었다. 같은 병원에서 치료종결을 하지는 못했다. 이후 몇 번 더 병원을 찾기는 했으나 전부 짤막하게 다녔다(그러지 말걸). 현재 다니는 병원에서는 ADHD를 먼저 진단받았고, 얼마 후 양극성장애를 다시 진단받았다.(아니길 바랐는데...)

위에 표처럼, (경)조증과 ADHD 사이에는 겹치는 증상이 많다. 하지만 고양된/과대한 기분 여부, 빠른 사고, 수면욕구 감소, 목표지향적 활동 증가, 삽화적인지 만성적인지, 산만해지는 원인이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 자살사고가 있는지 등의 여부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타겟은 우울 삽화가 아니다. ADHD랑 비슷하지만 무언가 확실히 다른, (경)조증 삽화가 있었는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양극성장애를 갖고 있다면, 우울 삽화와 (경)조증 삽화의 전구기에 나타나는 신호를 캐치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어렵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삽화를 관리하기 위해 정한 경조증 삽화의 불길한 징조 및 ADHD와의 차이를 적어보겠다.


괜히 로판풍으로 만듬


1. 문제가 늘 존재하는가(ADHD), 아니면 특정 시기에만 존재하는가(양극성장애)

주의력과 실행기능 문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겪어왔다. 그런데 양극성장애 진단기준을 옆에 놓고 기억을 짚어 보면 18살 즈음에 이상한 시기가 있었다. 엄마도 그때를 두고 '사춘기를 특이하게 겪는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첫 경조증 삽화였지 싶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어릴 때부터 항상 은은하게 우울한 편이었다.

내 양극성장애의 느낌적인 느낌


보통 양극성장애라고 하면 우울과 조증이 번갈아 규칙적으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중간에 괜찮은 기간이 있기도 한 데다가 보통은 우울 삽화가 길다.

난 어떤 느낌이냐면, 늘 은은하게 우울하다가 아주 짧은 기간, 한 달보다는 길고 세 달보다는 짧은 기간에 팍 솟아오른다. 못이 박힌 것처럼 특이한 시기가 있다. 그러고 나면 다시금 기분과 실행력이 떨어지는데, 이때 경조증 기간에 벌린 일을 수습해야 하므로 배로 힘들다.
'은은하게 우울한' 중간에도 변화가 있기는 있다. 기분이 괜찮아지는 때도 있고(하지만 사고 방식까지 건강해지진 않는다), 아니면 완전히 무기력해져 모든 사회활동을 그만두는 때가 있기도 하다. 이럴 때는 출근 준비도 무슨 소행성 파괴하러 가는 임무 준비하듯이 힘들다.
나는 우울증과는 약간 다른, 비정형 우울이 대부분이고 양극성장애에서는 비정형 우울이 흔하다고 한다.
그리고 기분이 들뜨고 실행력이 올라가는 정도의 경조증이 많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다소 심하다.(의사선생님 왈 '경조증보다 심하고 조증보다 약하다'고 함.)

예컨대 내가 평소에 책을 한 권 두 권씩 충동구매하는 사람이었다 치자. 경조증 기간에는 100만원을 쓴다. 충동구매인 건 동일한데 스케일이 다르다. 또 평소 하던 행동과 완전히 다른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두 달 동안 내 연봉의 70% 정도를 여행에 쏟아부은 적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데 거의 2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탔던 것 같다. 낮 알바와 밤 알바를 동시에 잡아서 쪽잠만 잔 적도 있다. 또 어떨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번개에 나가 클럽이며 바를 밤새 돌아다녔다. 친구가 떼인 돈을 대신 받으러(=싸우러)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어딘가에 참여해 기회를 얻은 적도 있다. 활동 반경이 넓어지므로 경조증 기간에는 친구가 230920347명 정도 생긴다. 물론 경조증 기간이 끝나면, 원래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인간관계이므로 모두 사라진다...

(참고로 최근 몇 년간은 심각한 삽화를 겪은 적이 없다. 평소 기분도 평온함에 가까운 상태가 길어졌다.)

2. 예민함과 짜증 (경조증 삽화)

평소에도 감정기복이 있는 편이다. 지나간 일을 곱씹기도 잘한다.
이름 때문인지 (경)조증 때는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시기에는 물론 기분이 들뜨고 자신만만해질 수 있다. 그런데... 정반대로 매우 예민해져서 길에서 어깨를 스쳤다는 이유로 공격할 수도 있다.
사실 (경)조증 시기 기분의 특징은 과하고, 드라마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기분으로는 ADHD와 경조증을 구별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평소보다 '짜증'이 늘어나는지를 살핀다. 경조증 때 자신만만해지기는 한다. 뭐든 다 잘될 것 같달까? 그런데 그것보다 기억에 강하게 남는 건 바늘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짜증이 나는 '예민한 상태'다. 기분이 들뜬다기보다도 뭔가 부글부글하는 느낌이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부글거리는 게 다 빠져나가지 않는 느낌인데... 아무튼 평소의 내가 자책을 하는 일은 흔해도 짜증을 내는 일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이걸 신호로 삼기로 했다.

3. 수면 욕구 감소 (경조증 삽화)

ADHD는 보통 수면장애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원체 늦게 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잠은 오후에 깨곤 했다.
그런데 경조증일 때는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안 잔다.
'잠을 안 잘 거야!!'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냥, 할 일이 많아서... 그걸 다 하려다 보니까... ....쥐구멍 어딨죠?

4. 병원을 그만 다녀도 된다고 생각함. (병식이 없어진다)(경조증 삽화)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 (경)조증 삽화의 제일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조증의 악화 과정은 ‘역을 떠나는 기차’에 비유할 수 있다(Miklowitz, 2011)"고 한다. 삽화에 잡아먹힌 이후에는 그냥 다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병원을 안 가려는 건 아니지만 여러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안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사고하는 방식이 단박에 바뀌어버린다. 그래서인지... 헤아려보면 대략 서너 번 이상의 경조증 삽화가 있었던 것 같지만, 병원에서 제대로 관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5. 목표지향적 활동이 증가한다(경조증 삽화)

나는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고 여러가지가 궁금하다.(TCI 자극추구 99점^^)
우울할 때는 이런 호기심도 사라지지만, 아무튼 정신이 멀쩡할 때는 이것저것 조금씩 찍어먹기를 좋아한다.
평소에는 이미 준비된 활동에 살짝 발을 담그는 정도에서 멈춘다(TCI 위험회피 99점^^). 그런데 경조증 때는 내가 일을 벌인다. 갑자기 약속을 마구 만드는데, 즉흥적인 약속을 잡으려는 시도도 많이 한다. 이 감각은 평소와는 아주 다르고, 그래서 굉장히 특이하기 때문에 대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러다 중간에 삽화가 끝나버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남아 있는 약속은 미래의 불쌍한 내가 울면서 처리하게 된다...

6. 사고 질주(racing thought)(ADHD, 경조증 삽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는 건 ADHD와 경조증 삽화의 공통점이다.
이것만으로는 평소 상태에서 경조증 삽화로 진입하는 시기를 구별할 수 없다.
이번에 병원에 갔을 때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생각이 많은 건 평소와 비슷하지만 좀 더 심하다"고만 했다.
하지만 다르긴 다르다. 평소에는 "TV가 여러 대 켜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인 반면, 경조증 삽화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귓가에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최대한 비유해 봄)
조금 더 생각해보면 말이 많아진 것도 신호였던 것 같다. 말이 늘어나는 것도 이 사고 질주와 관계가 있다. 이번에는 정말 머리에 힘주고 참았는데... 그래도 정신 차려 보면 이미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짝 무서웠다...
평소 잡생각이 많은 편이고, 이건 때때로 '창의력' 비스무레하게 보일 만한 결과물을 내기도 하지만, 경조증 삽화일 때는 생각을 터무니없이 연결하는 경우도 많아서 확률이 반반이다. 그리고 후속 작업이 이어지지 않는다...




여러가지를 썼지만, 사실 다가오는 경조증 삽화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기억을 더듬고 기분을 추적한 결과, 내가 경조증의 신호로 삼을 만한 것은 '짜증' '목표지향적 활동 증가', 그리고 '사고 질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 증상들을 미리 캐치한 덕분에 기분조절제를 늘릴 수 있었다. 약을 늘리니까 며칠만에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용량은 정말 조금 늘었는데, 만약 나도 의사선생님도 모른 채 삽화의 기차가 달렸다면 이번엔 무슨 기상천외한 사고를 쳤을까...^^

삽화는 시작을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끝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내가 제일 괴로운 부분이 그 갑작스러운 종료다. 삽화는 지멋대로 멈추고 나는 하향 곡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인생은 계속된다...

양극성장애와 ADHD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증상이 발현한 환자로서, 나의 목표는 뜬금없는 삶의 기복을 줄이는 것이다. 어릴 때보다는 증상이 훨씬 덜하지만(서른이 넘으면 증상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내 상태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1형 양극성장애 환자의 36.3%, 2형 양극성장애 환자의 32.4%가 자살시도를 한다. 시도하는 비율은 비슷한데 성공률은 2형 양극성장애 쪽이 높다. 2형 양극성장애의 약 10~15%가 자살에 성공한다. 그리고 2형의 경우, 우울 삽화와 조증 삽화의 비율이 37:1이다. (1형은 3:1) 잠깐의 경조증 삽화와 정상적인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은은하고 만성적인 우울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2형 양극성장애에서는 덜하다고 하지만, 1형 양극성장애에서는 조증 삽화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뇌에 타격이 가면서 인지기능과 실행기능 저하가 따라온다고 한다. 2형도 방치하면 1형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1형 양극성장애에서 찾아오는 조증의 특징은 망상과 환청 같은 정신증 증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인생에 굉장히 파괴적이다. 2형 양극성장애도 원래는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1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단독적인 병명의 위치를 얻게 되었다.

관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꽤 단단하지만, 솔직히 병원을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지,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진료 보러 가면 여쭤봐야겠다...

그럼 끝!





참고한 책

양극성장애 - 조울병의 이해와 치료, 제3판 | 박원명,전덕인 | 시그마프레스 | 2019
양극성 장애 - 기분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람들 | 이상심리학 시리즈 3 | 조용래,김빛나 | 학지사 | 2016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 리단 (지은이),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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