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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

자해를 '하던' 마음 - <자해를 하는 마음>을 읽고

by 플리🎵 2022. 6. 19.

자해를 하는 마음 - 오해를 넘어 이해로

임민경 | 아몬드 | 2022.1.28



자해를 다룬 대중서는 드물기에 출간되자마자 읽고 싶었지만, 오래 망설이다가 얼마 전에야 다 읽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려 깊은 책이었다.
이 책에는 자해의 개념이 변화한 역사, 문화와 현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리스트컷'이 자해의 대표 이미지로 부상한 과정, 자해 이론 및 연구가 고루 정리되어 있다. 인증샷이 중요해진 가장 최신의 '자해 경향'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말이 알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자해 개론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자해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자해를 하는 이유도 "관심 받으려고"라는 문장으로 일축되기 일쑤다. 하지만 통계로도 나와 있으니 무턱대고 부정하긴 어렵다. 저자는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자해에 대한 여러 사실을 빠짐없이, 또 가감없이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그간 이 책을 못 읽은 이유는 결국 자해러였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겨우 이 글을 쓰며 비로소 마주보는 작업을 했다. 6월 19일에 글을 올린 뒤로 몇 번이나 고쳤다. 비공개로 돌렸다가 공개로 돌리기도 십수 번이었다. 지난 수정본을 보면 나는 어쨌거나 자해를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엔 나도 자해러였는데 지금은 안 해. 안 하는 게 더 좋아. 그러니까 하지 말자. 언젠가 좋아질 거야."

그렇다. 어쩐지 산독기 가득 일타 강사 성공기, 또는 인생에 위로가 되는 문구를 모은 책 같은 느낌이 난다.
언젠가 좋아진다.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아, 이게 이렇게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었던가?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땠더라?

게다가 내 이야기만 줄창 쓰고 보니, 남의 책을 빌어 입을 뗀 주제에 너무 영양가 없는 포스팅을 낸 것 같았다.(책은 이용당했따...)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덜어내고 나름대로 속을 채운 결과물이 이 버전이다. 지금은 이 버전이 최선이지 싶다.




나는 (전)자해러


내 왼쪽 손목에는 흉터 여러 줄이 있다. 오른쪽 손목과 팔뚝 안쪽, 허벅지 위, 손가락, 배에도 작은 흉터가 드문드문 널려 있다. 비교적 가벼운 자해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본격적으로(?) 어딘가를 긋는 자해를 한 시기는 약 17살부터 24살까지다. 그리고 24살 이후로는 심각한 자해를 한 적이 없다.
자해하는 사람을 향한 세간의 시선은 어떨까. 특히 요즘에는 '관심종자', '우울 전시', '허세'라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지 싶다. 그런데 이런 따끔한 일침이 자해와 우울 전시를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과 경쟁하듯, ‘자해러’와 '정병러', '멘헤라'는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 같다.

물론 관심을 끌기 위한 자해는 있다.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자해도 있다. 사람들이 질색하는 바로 그 자해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이 부분을 명확히 짚으면서도, '관심을 끌려고 자해를 한다'는 인식을 강화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해가 관계 내에서 서로에게 '학습'될 수 있으며, 특정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 더 많이 발생할 수 있음은 염연한 사실이다"라고 쓰면서도, "이런 논리가 자해를 가벼운 유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까 봐 염려스럽다"고 쓴다.

설령 유행을 따라, 관심을 끌 목적으로 자해를 한다 해도 그 심각성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해는 ‘자살할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자살 행동과 구분되며, 따라서 ‘비자살적’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그래서인지 '죽지도 않을 거면서 관심 끌려고 쇼한다'는 말이 나오곤 하지만, 자해는 정말로 죽음과 먼 행동일까? 자해 당사자의 의도가 어떻든, 자해는 자살 시도와 연관이 높은 예측 인자다. 죽고 싶어서든 아니든, 자해는 누적될수록 차츰 자살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가까운 이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대체 왜?"



손목을 그은 나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엄마와 동생이었다. 엄마는 내가 손목을 그은 이유를 모르며, 나는 피가 낭자한 욕실을 본 엄마의 마음을 모른다. 엄마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누구보다 궁금했겠지만, 또 누구보다도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이 두려우셨으리라.

웹에서 검색을 해보면 대개 '위험요인'과 '보호요인'이라는 틀로 자해를 설명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해의 위험요인에는 아동기 학대, 불안정 애착, 정서조절 곤란, 낮은 고통 감내력[각주:1], 충동성, 지인이나 SNS 및 미디어를 통해 자해를 접한 빈도 등이 있다. 그리고 위험요인에 노출되었을 때 자해할 확률을 낮추는 보호요인에는 낙관성, 자기통제, 사회적 지지, 신뢰 등이 있다. 하지만 이걸로 내가 '왜' 자해를 했는지를 설명하긴 어려웠다.

이 책에는 자해의 '유익과 장벽(benefits and barriers)'이라는 모형이 소개되어 있다. '유익과 장벽' 모형은 "왜 어려움을 겪는 사람 중 누군가는 자해를 선택하며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지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모형을 두고 "'위험 요인'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자해의 '유익'과 자해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장벽'이라는 단어로 접근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썼다.

그동안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이 풀리는 듯했다. 자해를 했던 시기가 더없는 인생 암흑기였던 던 맞다. 하지만 자해 자체가 한없이 부정적인 경험만은 아니었다. 물론 자칫 자해를 권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니 단 한번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무엇보다, 비슷하게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친구들 중 자해를 하던 건 나뿐이었다.


(책에 나온)자해의 유익과 장벽


유익
1. 정서적 이득(자해는 정서 조절에 도움을 준다).
2. 자기처벌 욕구의 충족.
3. 또래 집단에서의 소속 욕구 충족.
4. (자해를 통해) 자신의 힘이나 심리적 고통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음.

장벽
1. 자해를 알지 못함.
2. 자기(self)에 대한 긍정적 관점.
3. 신체적 고통.
4. 자해 관련 자극에 대한 불쾌감.
5. 사회규범.



놀랍게도(?) 자해에는 이득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이득을 얻자고 자해를 선택하진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자해가 비교적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손톱 자국이 남도록 주먹을 쥐거나, 이를 악물거나, 뺨을 살짝 때린다거나 하는 행동은 다들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모두 긴장과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기 위한 행동이다. 자해 당사자에게 자해의 이유를 물어도 '편해진다', '이완된다'와 관련한 표현을 많이 쓴다고 한다. 순간의 파괴적인 감정을 다루기 위한, 다급하게 이뤄지는, 일종의 '미숙한 응급 처치'로 자해를 생각하면 어떨까. 물론 '굳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굳이 손목을 긋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사용하고 그 결과를 나눔으로써 얻는 사회적 이득도 빼놓을 순 없다. 하지만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든, 감정을 조절해 편해지기 위해서든, 또는 절박한 도움 요청이었든, 결국에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로 수렴되는 것 아닐까. '잘 살고 싶다'는.


나는 왜 그랬을까?


위에 인용한 모형을 참고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자해로 '정서적 이득'을 얻었다. 고통을 표현할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사회적 관계를 원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어설프게 끝났다. 오히려 누가 상처를 눈치채면 당황하는 편이었다.
손목을 긋기 전에 다른 신호가 있었다. 팔을 세게 쥐어 손톱 자국을 내거나, 강하게 피부를 긁어 벗기거나, 건선 두피에 딱지가 앉으면 진물이 흐를 때까지 뜯었다. 자해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지만 피어싱도 많이 했다.

자해를 하던 시기에는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실제로도 무력했다. 나와 동생은 집에서 언제나 초긴장 상태였다. 엄마나 아빠의 발소리가 집에 가까워질 때부터 공포가 시작됐다. 집 안도 마찬가지였다. 방문 밖에서 나는 부모님의 기척에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였다. 언제든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책상 앞에서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부모님이 싸울 땐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다. 부모님과 부딪히기도 참 많이 부딪혔다. 그럴 때 손이 가는 대로 어딘가를 그었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푼 풍선에 부드럽게 구멍이 나며 무언가가 조용히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경제력이 없으니 집을 나갈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잠깐 나갔다 올 수도 없었다. 기척을 내면 엄마가 들어올까봐, 또는 아빠가 들어올까봐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의 세상에서는 통금시간에 늦으면 몸을 팔다 온 거였고, 저녁에 슈퍼를 가면 몸을 팔러 가는 거였고, 반바지도 몸을 팔려고 입는 거였다. 그런데 산책을 한다고 밖으로 나간다면? 시도한 적도 있다. 뭐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다른 집에선 저녁에 산책을 나가거나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자해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물리적으로는 어떤 공간에 갇혀 있었고 정신적으로는 현재에 갇혀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목숨과 인생이 다른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새삼 느낄 때마다 죽고 싶었다. 태어난 게 문제라면 죽어서 갚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부모님과의 문제로부터 비롯되기도 했지만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서의 혼란에서 나오기도 했다. 감정은 폭발 직전의 별처럼 뭉쳤다. 중력에 붕괴하기 전에 손목을 그었다. 신기하게도 자해를 하면 호흡도 순간적으로 편해지곤 했다.

아주 어릴 땐 동생과 침대에 들어가 자는 척을 했다. 자는 척하는 걸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잠든 숨소리를 연기하면서. 나는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의 특정 장면을 잘 보지 못한다. 어딘가에 숨어 마음을 졸이는 클리셰를 보면 소위 '트리거'가 당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트리거 워닝에 포함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장면에 나는 공포를 느낀다. 그런 유년과 청소년기였다.(이제 심각하진 않다!)




자해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 능력이 없다. '한 시간 뒤엔 끝날 거야', '1년 뒤에 독립을 할 거야' 같은 상상이 가능했더라면 자해 대신 공상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손목을 긋는다는 이미지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충동성이 낮고 자기 조절이 잘 되는 기질을 타고나, 심호흡이라도 하며 나를 다스릴 수 있었다면? 차라리 물건을 부수거나 소리를 지르고, 부모님을 들이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감정을 풀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밖에도 '건강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은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커터칼이나 조각칼만 눈에 들어왔다. 취약한 기질, 불안정한 가정 환경, 서투른 사회성, 나만 죽으면 다 끝날 것 같다는 인지 오류와, 이 오류가 다시 불러오는 우울이 합쳐지며 길을 더욱 좁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면서 문제를 조목조목 뜯을 수 있지만, 그땐 그냥 어쩔 줄을 몰랐다. 자살이 유일한 답처럼 보일 때가 있듯이, 자해가 유일한 수단으로 보일 때가 있다.



자해를 끝내려면


어느날 현관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욕을 퍼부었다.(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있었겠지) 나는 현관에 가만히 서 있다가, 그대로 뛰쳐나가 근처 여관방을 잡았다. 그러고는 컵라면을 배부르게 먹고 소주를 마신 뒤 손목을 그었다. 응급실에 실려갔다. 엄마의 얼굴, 의사선생님이 질색하던 표정, 그 외에는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솔직히 조금 쪽팔려…)
자살 소동 후, 잠시 끊었던(?)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진단명이 기분부전증에서 양극성 장애로 바뀌었다. 다시 무기력한 상태로 돌아가 하루종일 방에 불도 안 켜고 드라마만 정주행했다. 그런데 원래 성격대로라면 이 꼴을 못 봤을 엄마가 뜻밖에도 나를 그냥 내버려뒀다. 사실 나는 이미 18살 즈음부터 미친년처럼 굴고 있었는데 자살 소동까지 벌였으니 엄마도 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셨으리라. 또 당신과 싸우다가 내가 뛰쳐나갔으니, 섣불리 말을 걸었다간 또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으셨을지도 모른다.

두어 달 뒤, 아예 일을 안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카페 알바를 했다. 한 달만에 잘렸다.
직무가 안 맞는데도 평소 좋아했던 회사라는 이유로 이력서를 넣었다가 덜컥 붙었다. 한 달만에 잘렸다.

담배가 늘었다. 방에서 창문을 열고 궁상맞게 담배를 피웠다. 당연하지만 동생이 질색했다.(그렇게 질색하던 동생도 흡연자가 되고 말았지만...) 처음 이 글을 쓸 땐 건강한 방법으로 자해를 멈췄다고 쓰고 싶었다. 날붙이를 숨기기도 했고, 서랍에 초콜릿을 넣어두기도 했었으니까. 약을 한 번에 털어먹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약이 남으면 꼬박꼬박 버렸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지만, 담배도 있었다. 뭐가 제일 효과적이었을까? 사실 이런 노력이 전부 무색하게도, 그저 다시 경조증이 찾아온 덕분에 집을 나갈 수 있었고, 환경이 변하면서 멈춘 것뿐일지도. 몇 개월 뒤 다시 취직을 했다. 고시원에서 살며 2년간 일했다. 자해가 멈췄다. 집에서처럼 긴장되는 일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새삼스럽게도, 내가 정말로 공포와 긴장 속에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매일 달고 살던 속쓰림과 위경련도 차츰 나아졌다. 고시원의 방에 있어도, 갇혀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새벽에 바람을 쐬러 나가도 발길질을 당하지 않는다. 경제력, 자립. 이토록 흔하고 뻔한 이야기.

전두엽이 성장한 덕분도 있을 것이다. 경제력이 생기자 정신과를 찾는 부담이 줄었고 심리상담도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었다. 환경의 변화가 먼저였는지, 내 변화가 먼저였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해를 정말로 그만두게 된 시점을 ‘자해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때’라고 한다면, 자해는 나와 환경 모두가 변화한 다음에야 멈추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들이는 돈, 시간, 노력에 비해 자해는 얼마나 쉬운가. 쉬운 데 비해 얼마나 효과적이고 즉각적인가. 피가 흐르는 손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 내 고통을 표현하기에 그만큼 알맞은 이미지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자해보다 명상이나 심호흡이 더 좋다. 자해라는 방법에는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편들어주는 과정이 없다. 오로지 질책하고 상처입힐 뿐이다. 해소되는 기분은 한순간이고, 또 나를 한심해하며 칼을 숨긴다.

순간 치미는 불안과 분노를 조금 더 오래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건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자해를 했던 나를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 자신에게 '진짜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설령 과거와 비슷한 상태에 다시 놓이더라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목만 긋고 있을 무력한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 너에게 그런 시간이 왔다.


흉터


사실 흉터를 신경 안 쓴다. 자해를 하지 말라는 이유 중 하나로 흉터가 얘기되지만 난 아무 생각이 없다... 물론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회적 스킬이 차츰 성장하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흉터를 가리려는 동작이 더 눈에 띈다.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낫다. 아마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도 볼 것 다 보고 살아왔으니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후회되는 건 따로 있다. 엄마와 동생에게 그 현장을 보게 만든 것이,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아 동네를 헤매게 한 것이 미안하고, 고맙고, 후회된다. 물론 나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했다. 하지만 평생 그럴 수 없는(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가 흉터를 보며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미숙한 방법이었지만, 어쨌든 이 흉터는 내가 싸웠던 흔적이다. 살아나왔다는 증거다. 사실 이런 생각조차 안 들 만큼 흉터가 대수롭지 않아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해하던 나를 이해하지만, 자해를 낭만적이거나 비장하게 그리고 싶진 않다. 당시의 내게 자해는 정말로 응급 처치 같은 역할을 했지만 계속 나 자신에게 분노하는 꼴이었다. 목이 마르다고 소금물을 계속 마신 셈이다. 지금 왼쪽 손목의 흉터 위에는 타투가 있다. 굳이 흉터에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타투이스트 선생님이 갑자기 감성 충만하게 "과거의 상처를 이렇게 승화하는 분들이 많으세요"라고 하시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손목에 적은 문구는 'Moderato Cantabile'다. 나는 그냥 적당히, 그리고 노래하듯이 살고 싶다. 이 타투를 할 땐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간 정말 패배자가 될까봐 두려웠지만, 그래서 일부러 이런 표현을 골랐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죽음과 가까웠고 매일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자란 사람이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고, 때로는 누군가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 자체가 엄청난 성장 아닐까? 누구도 지금의 나보다 더 잘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당신의 삶도 그럴 것이다. 당신은 지금 미숙하게 굴고 있을 수도 있고, 앞이 안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당신보다 잘 해낼 순 없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아낀다.

백 사람에게는 백 가지의 문제가 있다. 한데 묶어 '불우한 유년기'라 부를 수 있다 해도 그 변주를 듣다 보면 무엇 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 독립, 반항, 절연이라는 조치 한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 더욱 줄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고 경험을 풀어놓는 것,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 글을 일기장으로 옮길까 고민하다가 결국 공개로 올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인터넷에는 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올라온다. 그래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나 늘리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솔직히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여기에 살아 있어서, 이 속도를 찾았다.





  1. 주관적으로 혐오스럽거나 위협적인 심리상태를 견디는 능력. 정서적 고통 감내력이 낮은 사람들은 고통을 견디기 힘든 것, 자신이 다룰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기에 부정적인 정서에 회피로 대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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