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 약물일기

Day 95: 병원 방문

플리🎵 2022. 7. 22. 16:16

 

두 줄 요약:

메디키넷 10mg+10mg로 증량

아빌리파이 1mg로 증량

 

 

원래 수요일 진료인데 늦잠 자서 못 갓다.. 그래서 오늘 점심시간에 다녀왔다.... 이 병원이... 집에서는 가깝지만 회사에서는 멀다... 택시 탔다... (피눈물)

오늘은 또 4층으로 가야 하는데 5층으로 가서 멍때리고 있었다...(이 병원은 두 개 층을 쓰고 있다.. 내가 진료 보는 선생님은 4층에 잇다...) 바보냐 진짜?ㅠㅠㅠ 

 

 

지난 줄거리🖖

😣 들뜨는 감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 짜증도 늘었다. 그리고 불쑥불쑥 옛날 생각이 나는 바람에 잘 지내다가도 살짝 힘들었다.

🧐 저번에 말한 그 트친님께서 기분 기록지를 노션으로 쓰시는 걸 보고 또 따라했다 ㅋㅋㅋㅋ

원래 쓰고 있던 일지에서 '표 보기'를 체크하면 기분기록지 역할도 할 수 있었는데!!! 왜 지금껏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지만 생활이 다시 망가진 시기에 올리려니 좀 민망하군... 저 다시 힘낼 테니까요 응응  

 

 

😕 한... 20년 만에 기립성 저혈압으로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주차장 바닥이었고, 자전거에 깔려 있었고, 바로 옆에 바퀴벌레 시체가 있었다... 다행히 뇌에는 이상 없고 안경이 깨지지도 않았다.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 귀에 피가 조금 난 정도. 또 정말 오랜만에 응급실에 가 봤는데, 거기서 제 발로 걸어다니는 환자는 그냥 멀쩡한 것이기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열심히 대기하고 또 대기했다.

그나저나 귀 안에 피난 걸 봐주십사 했더니 마스크에 눌린 상처가 더 심각하다며 마스크 끈에 거즈 감아주신 ㅋㅋㅋ 선생님 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 

 

 

DAY 95: 상담 내용

 

📍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에 나온 상담 예시를 참고해서 진료실 이야깃거리를 정리해 봤다. 일지와 기분 기록지가 큰 도움이 됐다. 내가 나의 정신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수면

🔹 바빠서 수면 시간이 줄긴 했지만 '안 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다. 진심 일찍 자고 싶다.

 

활동

🔹 생각이 날아다녔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지만 쫓아가기가 더 힘든 느낌. 원래 adhd 약을 먹으면 머리가 차분해졌는데, 다시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 말이 많아졌고 다른 사람 말을 끊기도 했다. 

🔹 갑자기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져서 시키지도 않은 기획안 두 편을 썼다.

🔹 약속이 늘었다.

 

식사

🔹 문제 없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었는데, 약 복용 이후로 뭐라도 만들어 먹게 되었다. (의사선생님: 너무 좋네요)

 

기분

🔹 들뜨는 것과 동시에 이상하게 짜증도 늘었다. (의사선생님: 조증이 그렇습니다.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텐션이 올라가서 짜증도 느는 거예요. 약속에 나갔다가도 상대의 기분이 나쁠 수 있는, 과한 농담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자살사고

🔹 어떤 자살 방법은 후유증만 남고 성공을 못한다는 글을 보고, 그러면 나는 이러저러한 확실한 방법으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만 생각했다.  

 

사건

🔹 기립성 저혈압으로 오랜만에 기절했다. (의사선생님: 어이쿠)

🔹 저번에 말씀드린, 오래 미루던 일의 1차 마감을 끝냈다. (의사 선생님: 생산성이 올라갔군요?)

🔹 PTSD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아무튼 불안해질 때 런닝을 했더니 매우 좋았다. (의사 선생님: 런닝 정말 좋아요. 조증일 때 다른 운동을 하면 그것만 하루종일 할 수가 있는데, 런닝 정도는 아주 좋습니다. 저도 하루 두 번씩 뛰어요.) 

 

뭐야? 여기까지 쓰니까 상담 내용 거의 다 씀 ㅋㅋㅋ 

 

 

📍 설문지로 하는 우울, 무망감, 불안 검사를 다시 하고 결과를 들었다. 우울과 불안은 많이 떨어졌는데, 아직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구 했다 ㅋㅋ ㅠㅠ 아니 근데 그 질문지는....질문 자체가 좀 그래... 

 

📍 약물 관련해서는, 확실히 메디키넷이 들뜨게 만든 것 같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온 얘기가 웃겨서 적어둔다.

 

나: 그럼 아빌리파이가.. 용량이 작지만 일을 하긴 했다?
선생님: 그렇지요. 자기 나름대로 하긴 했다. 

어쩐지 기특해진 아빌리파이...

 

아무튼 메디키넷을 증량하고 싶다 했고, 선생님은 좀 고민하시는 듯했지만 아빌리파이도 같이 증량해 주셨다. 그래도 어린이 최소 용량이라는 2mg가 안 된다.

이번에도 콘서타를 권하셨지만 메디키넷을 먹겠다고 했다. 그러면 알약이 두 개니까, 평일에는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 딱 맞춰 먹을 수 있고, 주말에는 하나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 예전부터 맘에 걸리던 것, 그러니까 의사선생님이 불편한 이유를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가 트위터에서 '전이'라는 개념을 보고 혹시 이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불편함이 정말로 '전이'인지는 모르지만 이 방향으로 정리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나의 부적응적인 행동 패턴은 대체로 불우한 유년기/따돌림/성폭행/강도, 요 네 가지 중 하나에서 연원을 찾을 수가 있다^^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저 넷 중 하나다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정신과를 다닐 때도 '치료 종결'을 한 적이 없다고, 이 즈음에 불편함을 못 견뎌서 진료를 중단한 것 같다고 하자 선생님께서 혹시 수요일에 안 온 게 그 이유냐고 물어보셨다. 아니오 그것은 그냥 늦잠.... 진료 끝나고 생각하니... 또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폐쇄된 공간에 성인 남성과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조금 더 정확히는... 무섭다.

무섭다고 말하는 게, 그 옛날의 경험이 지금까지 영향을 준다고 인정하는 게 매우 자존심 상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얘기를 했다. '선생님이 저를 공격하실까봐 무섭다'고. 막상 입 밖에 내면 비논리적인 말이지만, 자기 내면을 샅샅이 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성의 바닥에 은은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너무나 진실이라서, 신체 역시 이 생각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곤 한다.

아무튼 성폭행에 대해 더 물으시기에 최대한 가감없이 말씀드렸다. 그런데 또 여기서부터 내가 한 말이 기억이 잘 안 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말한 건데도... 선생님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가 떨려서 놀랐다. 아직도 이런다고??? 아직도오?????

 

항상 뭐든 망설이다가 말해서 그런지... 선생님은 진료 때마다 '나는 시간이 괜찮다, 플리씨 시간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얘기하라'든가 '여기서 한 얘기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등등의 말씀을 해주신다. 그리고 오늘은 플리씨가 재밌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불편함을 최대한 견뎌 보자'고도 하셨다. 음 그리고... 티가 안 난다고도 했던가? 오늘 이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제일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얘길 하고 선생님 반응을 보고 나니 더 무서워졌다.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이런 것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이 보이는 몸짓이나 어떤 문장에서 나는 위협을 읽었다. 선생님이 진짜로 어디에서는 성폭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범죄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는 치료자고, 그 외의 것은 내가 알 필요도, 알 방법도 없다. 그런데 왜 이리 무서울까. 초진 갔을 때, 진료실 문을 열었을 때, 진료실에 남자 선생님이 앉아 있는 걸 보자마자 도망칠 루트부터 계산했다. 이 병원은 진료실 문을 열면 자동문이 하나 더 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심으로 절망했었다. 도망치기 힘들어 보여서.

 

이미 몇 번의 진료로 라포?가 쌓였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무서워서 돌아 버리겠어... 

 

지금 생각하면 가장 오래 다녔던 병원의 의사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 선생님이셨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전부 여자 선생님이셨다. 상담은 두 번 모두 완주했다.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도 "당신이 나를 공격할까봐 무섭습니다"라는 얘길 들으면 기분이 안 좋겠지?

그것도 그렇고,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그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두려움이 실체를 얻은 느낌이다... 진짜로 선생님이 무서워졌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손이 벌벌 떨렸다. 어쩌면 좋지... 다음 진료 어쩌지...^^ 괜히 말했나????^^^^^^^^^^

 

 

📍 오늘 처음으로 처방전의 질병코드를 봤다. (지금까지 안 본 것도 웃기다..)

F900랑 F318. 찾아보니까 ADHD랑 양극성 정동장애였다. 아주 조금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