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관리하기

미루기와 충동성, 2019년과 2022년

플리🎵 2022. 7. 6. 12:53


요며칠 트위터에 미루기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우다다 썼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또 심각하게 미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걸 정리해서 긴 글로 써본다.

미루기 인생 어언 nn년. 미루기는 흔하면서도 심각한 문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데, ADHD에게는 특히 더 심각해서 "ADHD의 암"이라고 묘사될 정도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뼈를 맞고 싶다면 이 글을 보시는 게 나을 것 같다.('미루는 습관'으로만 검색해도 좋은 책과 아티클이 많이 나온다. 미루기는 정말 연구가 많이 되어 있다!)

ADHD 진단을 받고 나서는 ‘미루기(지연행동, procrastination)’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흔히 게으른 사람이 일을 미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루는 행동의 핵심 원인은 '불안'이라는 '감정'이다. 하지만 일은 누구나 하기 싫고,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특별히 불안이 높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만 모아도 한 박스일텐데, 왜 누구는 일을 미루지 않고 누구는 미루는 걸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심각하고도 만성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이 있는 건 왜일까?

 

의외로 답이 ‘충동성’에 있었다. 지연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충동성이라고 한다.

이 인사이트는 미루기 분야 석학ㅋㅋ 피어스 스틸의 <미루기 방정식(the procrastination equation)>에서 봤다. 국내에도 <결심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와 있고, 충동성과 미루기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국내 연구도 많이 있다.

오늘 할 이야기에서 제일 중요하니까 크게 써야지.

충 동 성

충동성과 미루기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충동성은 생각한 걸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겨버리고 싶어하며, 또한 행동에 옮기는 속성이다. 게임 현질을 하고 싶어지면, 해버린다. 영화를 보는데 재미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린다.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간다든가, 정신 차려보니 충동구매를 한다든가 등등, 충동성은 삶의 여러 장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자기 조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 현질을 하고 싶어도 다음 달 재정을 생각해서 참을 것이다. 영화가 재미없어도 꾸역꾸역 앉아 있기는 할 것이다. 충동성의 결과는 곧 '자기 조절 능력이 제 역할을 못한 결과'다. 충동성과 자기 조절은 동의어가 아니지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미루기'를 다시 보자. 미루기는 안 좋은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저번에도 미루다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꾸물거리는 행동이다. 누구나 할일을 앞두고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과업을 완수했을 때의 이득 및 성취감 같은 미래의 보상이 있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불편과 불안을 잠시 인내하고 다스리며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충동성이 낮고 자기 조절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불안은 오히려 일에 착수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충동성이 높은 사람은 불안을 느낄 때 사고가 정지해 버린다고 한다. 공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믿고 내 부끄러운 부분을 공개하겠다. 나는 정말로 일을 미룰 때 패닉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되어 정신없이 딴짓거리를 찾아다닌다. 말벌에게 쫓기는 사람이 숨을 곳을 찾듯이..... 나는 '불안을 느낄 때 (합리적인) 사고가 정지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불편함과 불안 같은, 당장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도저히 참지 못해서 미숙한 방식으로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나려 한다. 웹서핑, 쇼핑, SNS, 방청소 같은 딴짓을 이용해서! 자기 조절 능력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미루기를 정서 조절의 방법으로 써버리는 거다! 사실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을 시작하는 건데!!!

피어스 스틸의 인사이트를 따라 충동성과 미루기의 관계를 말하면 이렇다.

 

미루기와 충동성은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충동성은 자기 조절의 실패이고(기다리는 대신 당장 행동함),
미루기 또한 자기 조절의 실패이다(행동하는 대신 당장 기다림).


그리고 바로 adhd가 충동성이 높고 자기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심지어 장기 보상은 보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adhd에게는 즉각적인 보상만이 보상이다! 마시멜로우 실험?! adhd는 접시에 마시멜로우가 놓이자마자 집어먹을 것이다!

...이외에도 adhd는 미루기에 적합한(?) 기질들을 타고났다. 또한 그런 특성들 때문에 미루기를 고치는 방법을 실천하기도 어렵다. 미루는 사람이 전부 adhd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일을 미룰 때 느끼는 불안의 원인도 여러가지다. 하지만 낮은 자기효능감, 현재쾌락적 시간관, 도파민 부족으로 인한 동기결여, 과업에 필요한 시간을 짧게 잡는 낙관적인 시간 감각, 취약한 작업기억, 산만함 등 ADHD의 여러 특성이 미루기를 악화시키는 건 확실하다.

 

ADHD를 공부하면서, 다시금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정신건강을 관리하려면 문제 자체를 재정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 뒤에 방안이 제시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ADHD를 타고난 기질적 문제라고만 보면(맞는 말이지만), 이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라고 재정의하고 나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지, 맞춰진 다음엔 내 습관을 어떻게 바꿀지 등등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미루기도 마찬가지다. 원인이 불안이고, 그러니까 뭐 편도체가 어쩌고... 이런 이야기들 다 맞는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라고? 물론 수많은 책에 수많은 방법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누구에게나 맞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루기를 나에게 맞춰 재정의해야 할 필요를, 자기화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나의 미루기를 부정적 감정을 조절할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로 재정의했다. 내가 게을러서, 또는 의지박약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특징의 뇌를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 말하면 충동성도 일종의 '신체적' 특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타고나는 기질은, 우리가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자동적으로 취하는 반응을 결정한다.

따라서 충동이 드는 것 자체를 우리가 어쩔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조절 능력'은 이런 운명론적 정의에서 분리할 수 있다. 어떤 기질을 타고났든, 내가 관리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속에 담고 있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운 충동성과 불안을 만드는 게 내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 나는 이걸 알맞은 온도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좀 차분하게 들고 있을 것 아닌가...

아래로는 내가 2019년에 미루기를 관리하려고 썼던 방법 중 하나인 질문지 작성, 그리고 지금 쓰는 대처방법 세트를 정리해 보았다.

2019년에는 심리상담과 책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했다. 나는 모든 일에 진돗개 수준 경보를 울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2019년에는 내가 두려워하는 일을 현실적으로 재평가해서 경보 수준을 적당히 맞추고, 그렇게 불안을 직면하고, '내가 정말 그 불안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난 3년은 내가 생각보다도 더 개복치라 좋은 팁도 그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임을 거듭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급기야 ADHD 진단을 받은 2022년에는 좀더 나에게 친절한 방향으로, 불안 자체를 낮추는 방법을 더해 보았다.

 

 


🔗 미룰 때 나 자신에게 물어볼 것들과 응급처치 방법

↑ 심각한 미루기가 도질 때 이 질문지를 썼다. 질문은 미루기 책들에 나오는 질문과 심리상담에서 배운 질문들을 합친 것이다. 상담실에서는 선생님이 물어봐주지만, 상담이 끝나고 나니까 이런 거 물어봐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리고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응급처치(?) 방안도 같이 적었다. 구성은 아래와 같다.


1️⃣ 미룰 때 여기에 답해보자

미룰 때 하는 생각을 알아보고, 습관적인 회피 행동을 파악하는 질문들이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잽싸게 포착해서 솔직하게 쏟아내는 게 포인트. "하기 싫어!!"만 써도 효과적이다.

2️⃣ [응급처치]오랜 습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습관

일을 미루고 딴짓을 하는 고질적인 습관을 대신할 새로운 습관을 적어두었다.

2-1. 불안을 직면하고 평가하자
현재 상황의 실제 심각도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힘겨움을 함께 적고 비교하는 파트다. 내가 무서워한 것보다는 엄청난 일이 아님을 확인하거나, 반대로 내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알아줌'으로써 불안을 견딜 수 있게 한다.

2-2. 주의력을 가져오자
집 나간 주의력을 되돌리는 간단한 명상 방법이 적혀 있다.

2-3. 시동을 걸자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ㅋㅋㅋ '일을 시작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가장 고난이도 파트.

3️⃣ 평가

미래의 나에게 제일 도움이 되었던 파트다! 이 질문지에서 가장 중요하다!
일을 시작하니까 실제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내 마음은 어땠는지 적는다.
나중에 이 파트를 보면 '맞아, 일을 시작하면 오히려 덜 불안했지', '맞아, 내가 해냈었지'라는 경험이 생각나면서 자기효능감도 살짝 올라가고 마음도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덧1: 중간에 보면 "'내 소중한 사람이나 존재'가 미루고 있다면 뭐라고 해 줄까?"라는 질문이 있다. 아마 미루기가 심각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나무라는 데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미루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니까 벌을 주듯 더 비판적으로 굴기도 한다. 하지만 채찍질은 불안을 더 높여서 더 미루게 만들 뿐이다. 칭찬과 다독임이 백만배 더 효과적이다! 설령 못하고 있어도 뻔뻔하게 "괜찮다"고 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잘 해주지 못한다. 이렇게 타인을 거쳐서 말하는 법을 상담에서 배웠다. 저 자리에는 고양이를 넣어도 되고, 애인을 넣어도 되고, 친구를 넣어도 된다. 아마 놀랄만큼 현실적이고 다정한 말이 나올걸..? 그 말 그대로 자신에게 돌려주자!

 

 



2022년... ADHD 진단을 받았다.(두둥탇) ADHD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미루기 대처 전략도 조금씩 수정했다. 그리하여, 지금 쓰고 있는 대처 전략 세트는 아래와 같다.

1️⃣ ADHD 약 잘 먹기 (신체 세팅!)
2️⃣ 요가, 스트레칭, 운동, 명상, 나에게 칭찬과 다독임 퍼붓기,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이미지 떠올리기 등으로 불안 낮추기 🆕 (정서 조절)
3️⃣ 미룰 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문장을 의식적으로 다르게 교체하기 🆕 (인지 교정)
4️⃣ 일을 시작하는 단계를 잘고 하찮게 쪼개기 (행동 교정)
5️⃣ '2분'만 시작하기 (행동 교정)
6️⃣ 잘 해내면 칭찬스티커 붙이기 🆕 (단기 보상 제공)


보통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은 행동과 인지 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런 방법들에 도움을 받아왔지만, 아주 잘 됐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2019년에 만든 질문지에도 나름대로 불안을 관리하는 질문을 넣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도 불안과 충동성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체감한 건 ADHD 약을 먹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전체적인 불안이 조금씩 낮아지고, 다른 영역에서의 충동성이 줄어들자 신기하게도 미루기까지 조금씩 좋아진 것이다. 또 뭐 뇌과학적인 이유로 자기 조절 능력이 향상되기도 한 것 같다.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 쉬워지고, 인내력이 살짝 자랐으니까.
그럼 여기서 한 술 더 뜨면 어떨까 싶었다. ‘일을 작게 쪼개세요', '2분만 시작하세요' 같은 행동 교정 이전에 '무조건 불안을 줄이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단계'가 있다면?

그렇게 추가한 것이 2️⃣번이고, 3️⃣번은 몇 년 동안 '나'에게 잘 먹히는 문장을 찾아온 결과다. 효과 떨어지면 또 바뀔 수 있다. 6️⃣번은 ADHD 맞춤 처방으로 추가했다. 30분 집중하면 스티커 하나를 받을 수 있다. 과집중 상태였을 때는 1시간 집중하고 10분 제대로 쉬면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두 스티커는 모양이 다르다. 진짜 이거 얼마나 재밌는지 아세요??)

그럼 2022년의 NEW 전략... 2️⃣번과 3️⃣번을 소개합니다.


2️⃣ 밖에 나가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서서 할 수 있는 요가를 한다.

유튜브에 찾아보면 서서 할 수 있는 요가가 많다! 선생님들 감사해요!!

 

내가 미룬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그냥, 냅다, 무조건 밖에 나가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이 안 풀려도 걍 나간다. 현재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는 걸어다녔는데, 회사 근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걸 찾다보니 지금은 스트레칭을 하거나 요가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효과가 꽤 좋다. 왜 효과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1. 미루고 있는 행동 자체가 한번 끊기고 주의 환기가 된다.
1-2. 동작에 집중하면 생각이 줄어들기 때문에 잠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1-3.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살짝 분비되면서 불안이 더욱 줄어든다.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과학적으로 맞든 아니든 이렇게 믿기로 했다.)

+ 대빵 중요 포인트: 의식적으로라도 지금 미루는 일 생각을 멈춘다. 걱정도 잊어버린다. '몇 시까지 마감해야지', '어떻게 진행해야지' 같은 생각도 우주 밖으로 날려버린다. 내가 미루고 있다는 사실도 걍 잊어버린다. 오로지 정확한 요가 자세를 잡는 데만 집중한다! 그래야 불안이 낮아진다!!!

노래 한 곡을 들으며 휘적휘적 움직인 다음 일터로 복귀하면 딱이다. 명상이나 가이드 이미지 떠올리기 같은 이완 요법을 쓰기도 하는데, 스트레칭과 요가의 점유율이 늘고 있다ㅋㅋㅋ 내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잘 맞나 보다.
"그냥 한다", "대충이라도 한다"는 참 좋은 말이지만... 죽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나면 정말로 그냥, 대충이라도 할 수 있었다.


3️⃣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이따 해야지', '이것만 보고 해야지', '정시에 해야지' 라는 생각을 '지금 진짜 쬐끔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교체하기

 

이 말은 원래 내가 일 미루면서 딴짓할 때 변명처럼 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일에 적용해도 먹힐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2-1. '이것만 보고 해야지'의 구조를 보면, 딴짓이 앞에 있고 할 일이 뒤에 있다. 그런데 '지금 쬐끔만 하고 봐야지'는 할 일이 앞에 있고 딴짓이 뒤에 있다. '쬐끔만' 할 것이기 때문에 금방 딴짓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선후관계만 바꿨을 뿐인데 뇌는 홀라당 속아 넘어가더라!!ㅋㅋㅋ
2-2. 당장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자는 게 아니다. '쬐끔만' 하는 거다. 그치만 '쬐끔'이라도 하면 오늘 아예 논 건 아니니까 죄책감도 줄어든다!
2-3. 이렇게 뇌한테 사기를 쳐서 일단 시작만 하면, 실제로 '쬐끔'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번 시동이 걸린 뇌는 웬만큼 더 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딴짓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한번 딴짓에 시동이 걸리면 뇌는 딴짓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
아무튼, 언제나 어제의 나를 저주했었는데... 요즘은 어제의 나한테 감사하는 일이 늘었다ㅋㅋㅋ






ADHD 진단을 받고 나서 이게 참 좋았다. ADHD가 더욱 일을 미루기 쉬운 이유를 알아서 좋았고, ADHD에게 흔한 인지오류를 알게 되어서 좋았고, 정신없이 딴짓에 빠져드는 이유를 알아서 좋았다. 선천적으로 체내 시계와 시간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다.
드디어 나라는 제품의 정확한 사양 설명서를 받아본 느낌이었다. 나는 일감을 받아서 작업하는 롤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감을 넘기고 일정을 관리하는 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미루기가 얼마나 협업에 지장을 많이 주는지 절감했다. 그런데 그러고도 미루는 버릇, 그러니까 '미루는 뇌'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것이 늘 좌절스러웠다.

물론 20대 때보다 훨씬 성숙해지기는 했다. 또한 ADHD 약을 복용하면서 충동성이 줄고 전반적인 불안이 낮아지자 미루는 습관의 관리도 덩달아 수월해졌다.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대처방법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옛날에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더 살아보니까 이제 알겠다. '성실한 사람'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다. 목표 자체가 신기루니까. 다들 그냥 성실해 보이게끔 자신을 계속 관리하고 있는 거였다. 힘들게, 고군분투하면서. 그렇게 보면 성실한 사람이 되자는 목표는 이룬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힘들게나마 관리를 하고 있으니까!

하도 구구절절 써놔서 누가 읽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연히 누군가가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간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겠다. 그럼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