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 약물일기

Day 72: 병원 방문

플리🎵 2022. 6. 29. 12:41

 

 

두 줄 요약:

메디키넷 10mg+5mg로 증량

아빌리파이 0.5mg 유지

 

병원 갔다가 출근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쓰자!!

 

 

previously on...🖖

🧐 중요한 일 미루는 건 여전하다. 찾아보니 이건 약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고!(슬프니까 빨간색으로 씀)

그래서 접근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만성적인 미루기의 원인이 게으름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그래서 일을 미룰 때 가이드 이미지를 이용한 가볍고 짧은 명상, 스트레칭, 심호흡 같은 이완요법을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이동 중, 다른 장소, 자기 직전 등등) 일 생각을 아예 안 해 보기로. 마음챙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걱정이 되는데 어떡해!?

아무튼 또 다음 진료 때까지 3주 동안 해보겠음. 어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제가 확실히 실험해서 알려드리겟습니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기분이 다소 저조햇다. 하지만 원인은 알고 있다! 나는 어른이니까...

수면시간이 불규칙하고 날씨가 흐리다. 런닝도 잠시 때려쳤다가 저번 주말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치만 비가 오니까... 헬스장을 끊어야 하나 싶다. 어떻게 보면 습관 들이기에 실패한 거지만, 이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떡해. 한 달 반 꾸준히 달린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또 하면 된다.

그리고 약 효과가 떨어지는 오후부터 엄청나게 짜증이 났다. 회사 분이 화나셨냐고 물어볼 정도. 최악!ㅠㅠ

 

🧐 트위터에서 트친님이 올려주신 '기분 기록지'라는 걸 보고 머릿속에 폭죽이 터졌다. 그래서 냉큼 양식을 만들어보았다.

항목은 환자용 기분기록지 개발 및 타당도 연구와 Up to date라는 사이트의 무드 차트를 참고했다.

나는 조증이 온 적이 없으므로(입원한 적이 없으므로) 해당 부분은 삭제하고, 내가 체크해야 하는 항목 몇 가지를 더했다. 

매일 쓰는 일지를 보면서 쓰니까 금방 채워졌다. 흐름이 한눈에 보여서 좋다. 새삼 내가 잠을 거지같이 잤구나, 하는 것도 실감이 났다. 병원 가기 전에 회상하는 것보다 정확도가 높지 싶다.. 나는.. 기억력이 안 조으니까.....

 

막상 진료 때 보여드리려니...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이걸 보며 내가 설명했는데, 확실히 횡설수설이 줄었다. 아주 쪼끔 횡설수설한 뒤, 상담시간 깔끔하게 15분 컷 했다.

 

 

DAY 72: 상담 내용

 

📍 병원에 5분 지각했다. 또 버스정류장 헷갈려서 잘못 내림!!! 빗길을 걸어감!!! 대체 왜!!!

 

📍 기분이 저조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아서 가볍게 넘어갔다.

우선, 정류장이나 역을 잘 지나치지 않게 된 것, 골목에서 차에 치일 뻔하는 위기가 줄어든 것, 지각이 줄어든 것, 그래서 생활이 편해졌다는 부분을 말씀드렸다. 특히 미팅이나 외부 일정 나갈 때 마음도 머리도 편안하다. 안절부절이 줄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고. 물론 약효가 끝나면 돌아가기 때문에, 타임리미트가 있다는 점에서는 신데렐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2시가 되기 전에 모든 퀘스트를 해치워야 되는 거야...

 

약효가 끝나는 오후 4-5시쯤부터 짜증이 난다는 것, 그때부터 충동구매와 현질이 개시된다(...)는 것도 말씀드렸다.

이 부분은 아빌리파이로 잡자고 하셨다. 사실 아빌리파이 효과를 잘 못 느꼈지만, 그런 고로 0.5mg 복용을 유지하게 되었다.

 

📍 저번 진료 때 의사님이 나보고 조금 저조해 보인다고, 우울하다고 했으면 약을 처방했을 거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진짜 기분이 저조해져서... 명의다 생각했으며... 이번에 이 생각 고대로 "당신은 명의입니다..." 식으로 말씀드렸더니 킄 하고 헛웃음을 치셨다.

나는 이렇게 헛소리 해서 상대가 웃으면 매우 뿌듯하다. 뭐 선생님이 웃고 싶어서 웃은 건 아니겠지만 제 기분이 좋습니다.

 

📍 워낙 스피드하게 adhd 진단을 받은지라, 그 뒤로도 내가 adhd인 증거와 adhd가 아닌 증거를 동시에 수집하고 있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엄마를 구슬려 어릴 때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랑은 사실 대화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내가 해냄.

 

· 나는 아기 때 잠을 심하게 불규칙하게 자고 낮밤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그치만 애기들은 원래 좀 그럼)

· 경기를 해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한번은 일상적인 동작으로 업었는데 그렇게 됐고, 한번은 아빠가 나를 벽에 던졌다고. (예에ㅔㅔㅔ???)

· 곤충이나 개구리 같은 생물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쳐다봤다고. 엄마 왈, "너는 어릴 때부터 참 유별났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adhd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거에만 꽂힌다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그러는구나... 그렇군요...)

· 굉장히 자주 넘어져서 무릎이 성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건 기억남)

· 초등학교 땐 위험한 놀이를 즐겼다.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브레이크 열고 달려서 덤불에 처박힌다던지(이걸 놀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하천 가를 자전거로 아슬아슬하게 달리다가 자전거랑 같이 굴러떨어진다던지... 그리고 확실히 남자애들이랑 자주 놀았다. (제가 과잉행동은 없었지만 충동성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도 동의하셨다.)

 

하지만 난 초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다. 근데 선생님께서 별 말씀 없으신 거 보면 그렇게... 진단에 뭐... 큰 영향은 없나보다...

 

📍 어릴 때 얘기랑 이어지면서... 

 

의사님: 이렇게 (외모를)보면 플리님한테 adhd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나: (너무 기쁨) 그렇게 보이나요? 너무 다행이다

 

📍 "남편분과 관계가 어떤지"하는 질문이 있었다. 무던한 사람이라 이해를 잘 해준다고,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고 나니 조금 더 되돌아보게 된다.

덜렁대는 부분, 가끔 지랄맞아지는 성격은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까 가족과 신랑만 알고 있다.

나를 사랑해서, 나와 같이 산다는 이유로 다양하게 고통받는 우리 신랑... 

그치만 adhd 약을 먹고 난 뒤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도 나 다음으로는 우리 신랑인 것 같다.

'너 (좋은 쪽으로)변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

 

📍 증량 욕심이 난다고, 약 용량이 늘면 지금 느끼는 좋은 점들이 더 괜찮아질 것 같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선생님도 현재 용량이 작기도 하고, 효과가 빨리 떨어지는 것 같다면 콘서타 18mg로 바꿀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냥 메디키넷을 먹겠다고 했다.

왜냐면 메디키넷은 오전 오후를 나눠 먹고 있는데, 그 간격을 상황 따라 조정할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다.

좋다는 게... 객관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나는 그냥 유연한 게 조와. 주말에 짧게 움직일 땐 하나만 먹을 수도 있고.

 

오후 약도 강하게 먹으면 잠이 안 올 수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녁 여덟 시에 먹고도 잘 잤다는 건 말씀 안 드렸다... 

3주 먹어보고 10mg가 괜찮으면 다음 진료 때는 10mg+10mg로 증량 요청을 드리고, 그 용량에서 유지할까 한다. 

 

📍 그리고 궁금했던 거! 시끄러운 곳에서 잠드는 게 혹시 뭐 때문인지 아시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 말씀으론 자극이 너무 과다할 경우 오히려 감각을 닫아버리게 된다는, 그런 가설이 있다고 한다.

궁금증 해결!

 

📍 ADHD 약을 먹을 때 커피를 마셔도 되나? 이게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일 것 같다.

오늘 진료에서 듣기로는 '약 복용하는 시간에서 앞뒤로 1시간 동안만 피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 체질따라, 용량 따라 다르니까 무조건 지금 다니는 병원 의사선생님과 상의하기..

참고로 나는 한밤중에 아메리카노 더블샷을 먹어도 잘 잔다.☕ 

 

📍 TMI1: 이 선생님은 약 설명을 엄청 자세히 해주신다. 의사들이 아빌리파이 2mg를 하도 쪼개 쓰니까 제약사에서 최근에 "옛다 1mg!"하고 저용량을 만들어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내가 알아야 하나? 싶지만 너무 재밌으므로 열심히 들었다.

TMI2: 병원에서 방향제를 뭐 쓰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향수를 뿌리고 가도 병원 방향제 냄새에 묻혀버린다. 개쎄다.

TMI3: 병원에 우산 놓고 왔다. 매번 방문 때마다 저 adhd에용!!! 하고 외치는 듯한 실수를 해서 괴롭다. 다음 진료 때는 약을 먹고 갈까 싶다... 엉엉...ㅠㅠ 

 

 

 

장마다.

어울리는 음악 하나 추천합니다. 에디 히긴스의 신주쿠 트와일라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