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의 기억법 - 기록하기 02
2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행 목록
계획을 위한 시간 계획 세우는 시간을 계획하기
✅ 포괄 실행 목록
일일 실행 목록
"계획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라"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장장 몇 달에 걸쳐서 하루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일상에 좀 스며들었다 싶을 때 다음 단계를 시작했다. 일지에 무엇을 어떻게 적을지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에서 '실행 목록'의 원문은 'To-Do List'다. 포괄 실행 목록은 'Comprehensive To-Do List'이고, 일일 실행 목록은 'Daily To-Do List'다. 이것만큼은 번역된 단어보다 영어가 더 친숙하다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실행 목록 대신,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투두리스트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포괄 실행 목록(포괄 투두리스트)
Comprehensive는 '포괄적인, 종합적인'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하자면 이 투두리스트는 아무런 구분이나 분류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써내려가는 리스트다. GTD의 수신함(Inbox)나 불렛저널의 일지 쓰기와 비슷한 방식이다.
ADHD를 가진 많은 성인들은 뜻하지 않은 일들이 적절하지 않은 시간에 '별안간' 떠오른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 뒤늦게 떠오르거나, 아직 일정이 급하지 않은 일들이 갑자기 구체화되면서 '당장 해야 될 것 같은' 문제로 다가오기도 한다.(몇 년 전 아버지 환갑 기념 여행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 생각이 나는 타이밍이 보통 그다지 안 좋다는 것이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 환갑 잔치 비행기표를 바로 끊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 진짜로 표를 끊으러 가면? 그게 바로 딴짓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날 때마다 적으면 된다!
그럼 어디까지 적어야 하는 걸까?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에서는 이 투두리스트가 얼마나 '포괄적이길' 원하는지 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걸 정해봤자 의미가 없을 듯해서 진짜 그냥 다 적었다.
· 당장 해야 하는 일
· 마감이 코앞인 일
· 급하진 않은데 갑자기 떠올라서 당장 해야 할 것 같은 일
· 중요해서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일
·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
· 갑자기 생각난 좋은 투잡 아이디어 (예: 유튜브ㅋㅋㅋ)
· 갑자기 하고 싶어진 일
· 그냥 하고 싶은 일
· 갑자기 인생 목표
· 약속
· 장보기 목록
· 상사가 시킨 일
· 회사 전화 받았을 때 메모
· 그날 있었던 특이한 일
·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알게 된 그 사람의 정보(회사, 가족, 생일, 기념일, 사는 지역, 최근 사건 등등)
+ 이건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나는 대화를 워낙 기억 못해서 상대를 서운하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대화 중에 내가 기억해야만 하는 정보는 적기 시작했다. 그래서 메모만 보면 스토커의 메모 같지만ㅠㅠ 이 덕분에 '저번에 그 일은 어떻게 됐어요?', 'ㅇㅇ씨가 저번에 ㅇㅇ라고 했었죠?', '우리 저번에 ㅇㅇ에서 밥 먹었잖아'라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
나는 한번 생각이 떠오르면 그게 계속 머릿속에 맴돌면서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손에 안 잡히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산만함이 시작된다. 이 투두리스트는 그 생각을 꺼내어 보관하는 장소다. 내가 이걸 습관화하고 나서 느낀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적어놓으니까 안심이 되어서 마음 놓고 잊어버리게 된다.(마음이 편해진다)
2. 1번과 이어지는 장점으로, 후딱 적고 지금 하는 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산만함 감소)
3. 중요한 일을 잊어버려도 투두리스트는 기억해 준다! (단, 이 투두리스트를 주기적으로 살펴본다는 전제 하에)

하지만 ADHD의 머릿속에 '할 일'만 떠오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할 일 외에도 당장 떠오른 생각, 느낌, 아이디어, 나중에 볼 웹사이트, 메모 등등을 실시간으로 전부 때려박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것이 '투두리스트에 적을 만한 할 일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리스트 작성의 장애물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냥 일지를 내 뇌가 업로드되는 클라우드라 생각하고 썼다. 클라우드 동기화는 자동이지만 이건 내가 수동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
그 결과가 다음과 같다.

캡쳐 이미지가 너무 길어서 엄청 축소했다; 틀을 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저땐 진지하게 했는데 지금 보니 걍 장식이다ㅋㅋㅋ 인지행동치료에서 본 이런저런 방법을 해보고 메모했더니 더 많아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렇게 기록하다 보니 대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대책이 안 섰다. 처리된 일들을 체크하거나, 다음날 다시 봤을 때 흥미가 떨어진 웹사이트 주소를 지우는 정도의 관리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매일매일 이 목록을 다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난장을 쳐 놓으니까 마음 편하게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일지를 그대로 '복사'한다. 뜻하지 않게 찾은 이 방법의 장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중에 얘기하기로!
그럼 이쯤에서 이번 단원 책갈피 지침을 보자.
✅ 포괄 실행 목록
책갈피 지침 2.2
1. 포괄 실행 목록을 작성하기 위하여 컴퓨터파일을 열거나 노트를 펼치십시오.
2.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찾으십시오.
3. 여러분의 모든 책무들, 계획들, 심부름, 약속, 레크리에이션 등에 관하여 적으십시오.
4. 노트나 컴퓨터파일을 나중에 검색하고 참조하기 쉬운 장소에 보관하십시오.
5. 포괄 실행 목록은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이나 책무를 상기시켜줍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상기할 수 있게 이것을 주기적으로 펼쳐보십시오. 그러나 이것은 일일 실행 목록은 아닙니다.
위에 첨부한 혼돈의 카오스 포괄 투두리스트는 약 2주 정도 지속했다.
지금은 저렇게까지는 안 쓴다^^
하지만 저 과정을 거친 덕분에, 나의 할 일에 어떤 태그를 달아줘야 하는지, 또 모두가 유용하게 쓰지만 내게는 필요없는 태그는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